뱀의 유혹
창세기 3장 1절부터 7절은 유혹이 작동하는 순서를 그대로 보여 준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되묻고 다음으로 경고를 부정하며 끝으로 사람의 욕구를 건드린다. 뱀은 먹는 날에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하와와 아담이 열매를 먹자 눈이 밝아졌으나 드러난 것은 벗은 몸이었다. 이 사건은 원죄 교리의 출발점이 되었고 신약은 예수를 마지막 아담이라 부르며 그 반대편에 세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에게 그어진 경계선이었다. 그 선을 넘은 자리에서 성경의 구원 이야기가 출발한다.
창세기 3장의 유혹은 단순한 꼬드김이 아니다. 순서가 있고 방식이 있다. 뱀이 던진 세 마디를 차례로 따라가면 사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가 드러난다.
유혹이 시작된 자리
무대는 에덴 동산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각종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 하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만 금하셨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존재로 소개된다 (창 3:1). 뱀은 아담이 아니라 하와에게 말을 걸었다.
첫째 단계 말씀을 흔든다
뱀은 명령을 부정하지 않고 되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는 하나뿐이었다. 질문은 그 하나를 전부로 부풀린다. 하와는 동산 나무의 열매를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고 답했다 (창 3:2-3).
둘째 단계 경고를 지운다
뱀은 이번에는 정면으로 맞섰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4). 하나님은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뱀의 말은 그 경고를 통째로 지운다. 말씀의 신빙성이 무너지면 금지는 근거를 잃는다.
셋째 단계 욕구를 건드린다
마지막 말은 약속의 형태를 띤다. 먹는 날에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창 3:5). 금지의 이유를 하나님의 시기심으로 돌리는 말이다. 하와가 나무를 다시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창 3:6). 몸의 욕구와 눈의 욕구와 지혜를 향한 욕심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경계선을 넘은 결과
하와는 열매를 먹고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었다. 그도 먹었다. 두 사람의 눈이 밝아지자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 (창 3: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어 주신 경계선이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사람은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 위에 올려놓았고 순전함을 잃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기독교 교리는 이 사건에서 원죄를 읽는다. 아담의 불순종이 죄된 본성을 모든 후손에게 남겼다는 이해다. 그래서 구원의 필요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바울은 예수를 마지막 아담이라 부르며 첫 사람과 나란히 놓는다 (고전 15:45). 첫 사람이 순종하지 않아 잃은 자리를 마지막 아담이 순종으로 되찾는다는 구도다.
이후 성경에 남은 자취
신약은 뱀의 정체를 분명히 밝힌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은 큰 용을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부른다. 유혹의 방식도 반복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탄은 기록된 말씀을 비틀어 인용했다. 다른 점은 예수께서 매번 말씀으로 되받으셨다는 데 있다.
마무리
창세기 3장의 유혹은 새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미 들은 말씀의 무게를 덜어 냈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을 지키라고 권한다. 유혹의 첫 자리가 늘 말씀을 흔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3:1 —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창세기 3:4 —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창세기 3:5 —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창세기 3:6-7 —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 고린도전서 15:45 —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 요한계시록 12:9 —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