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갈라는 창세기 10장에서 니므롯이 앗수르 땅에 세운 성읍으로 나온다.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레센이 함께 기록되며 갈라는 그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이라크 북부의 님루드 유적과 같은 곳으로 본다. 티그리스 강가에 자리 잡은 이 성읍은 주전 9세기에 앗수르의 수도가 되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와 살만에셀 3세 시대에 궁전과 신전이 세워졌다. 발굴에서 나온 부조와 비문은 제국의 규모를 보여 준다. 성경은 이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린 뒤 어떻게 되었는지도 함께 적는다.
갈라는 창세기 10장 11절과 12절에 니느웨와 나란히 나오는 성읍이다. 니므롯이 시날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세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오늘날 이라크 북부의 님루드 유적과 같은 곳으로 본다.
창세기 10장이 적은 자리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갈라진 민족들을 정리한다. 함의 자손 구스에게서 니므롯이 났고 그는 세상에 첫 용사였다 (창 10:8).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다.
니므롯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갔다. 그곳에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를 건축했다.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레센이 있었고 본문은 이곳을 큰 성읍이라 부른다 (창 10:11-12).
위치와 지리
갈라는 티그리스 강 동편에 자리 잡았다. 니느웨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거리다. 강을 낀 평야는 곡식을 대기에 넉넉했고 물길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이 지역이 앗수르의 본거지다. 갈라와 니느웨와 아수르가 삼각형을 이루며 제국의 중심을 만들었다.
앗수르의 수도가 되다
주전 879년 무렵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갈라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왕은 이곳에 큰 규모의 궁전과 성벽을 세웠다. 뒤를 이은 살만에셀 3세 때에도 갈라는 정치와 군사의 중심이었다.
수도가 옮겨 온 뒤 갈라는 단순한 지방 성읍이 아니었다. 왕의 원정과 조공이 모두 이 도시를 거쳤다.
발굴이 드러낸 모습
님루드 발굴은 앗수르의 문화를 보여 주는 자료를 많이 내놓았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북서 궁전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벽을 채운 부조와 비문은 왕의 정복과 제의를 새겨 놓았다.
도시 구획과 성벽의 흔적은 계획해서 세운 도시였음을 알려 준다. 창세기가 짧게 언급한 이름이 실제 유적과 맞물린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앗수르는 이스라엘 역사에 깊이 얽힌 제국이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 손에 무너졌고 백성은 흩어졌다. 갈라는 그 제국을 키워 낸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예언자들은 앗수르의 교만과 폭력을 지목했다. 이사야 10장은 앗수르를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라 부르면서도 그 교만을 벌하시겠다고 말한다. 나훔서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한다. 강대국의 흥망이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는 관점이다.
마무리
갈라는 창세기 10장에 이름 한 줄로 등장한다. 그 한 줄 뒤에 수백 년의 제국 역사가 이어졌다. 성읍은 흥했다가 앗수르의 몰락과 함께 무너졌고 흙 아래 묻혔다. 오늘 남은 폐허가 성경이 적은 지명의 자리를 확인해 준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0:8 —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 창세기 10:11-12 —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갈라를 건축하며
- 이사야 10:5 — 앗수르 사람은 내 진노의 막대기요
- 열왕기하 17:6 —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 나훔 3:7 —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