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사람이 한자리에 있던 첫 무대다. 창세기 3장 8절은 하나님이 동산에 거니시는 소리를 적는다. 그 소리는 낯선 일이 아니라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같은 절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 소리를 듣고 나무 사이에 숨는다. 죄가 들어오자 임재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동산에서 내보내시고 생명나무 길을 그룹과 불칼로 지키게 하신다. 성경의 나머지는 이 닫힌 길이 다시 열리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성막과 성전은 그 임재를 제한된 방식으로 되돌린 자리였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적는다.
에덴동산 이야기의 중심에는 땅이나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창세기 2장과 3장은 그 임재가 어떻게 주어졌고 어떻게 닫혔는지를 짧게 기록한다. 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자리를 잃은 사건이자 관계를 잃은 사건이다.
동산이라는 자리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땅에서 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사람을 두셨다(창 2:9).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사람에게는 그곳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이 맡겨졌다(창 2:15).
먹지 말라는 한 가지 명령만 주어졌다. 나머지는 다 허락된 자리였다.
함께 거니시던 관계
창세기 3장 8절은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말한다. 소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았음을 알린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간 장치가 필요 없던 때다.
창세기 2장 끝은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로 맺는다. 감출 것이 없는 관계였다.
소리가 두려움이 되다
같은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이 나무 사이에 숨는다. 하나님이 부르시자 아담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답한다(창 3:10). 관계의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뀐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달라져서 생긴 감정이 아니다. 사람 쪽이 달라졌다.
동산 바깥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셨다(창 3:23). 이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다(창 3:24). 추방은 벌이면서 보호이기도 하다. 죄를 안은 채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막힌다.
이후 성경에서 사람은 늘 동산 바깥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성막과 성전으로 이어지는 자리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성막 안에 자기 이름을 두신다. 성소의 휘장에는 그룹이 수놓여 있고 지성소 입구도 그룹이 지킨다. 에덴에서 길을 지키던 존재가 다시 등장한다.
성막과 성전은 임재를 다시 사람 가운데 두려는 제한된 방식이었다. 다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적는다. 거하셨다는 말은 장막을 쳤다는 뜻에 가깝다. 임재가 사람 곁으로 돌아오는 방식이 여기서 바뀐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은 마지막 그림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에덴에서 닫힌 자리가 여기서 다시 열린다.
마무리
에덴의 임재는 성경이 그리는 관계의 원형이다. 그 관계는 사람의 불순종으로 끊어졌고 동산의 문은 닫혔다. 성막과 성육신과 새 예루살렘은 그 닫힌 문을 다시 여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2:9 —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 창세기 2:25 —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창세기 3:8 —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 창세기 3:23-24 —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요한복음 1: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요한계시록 21:3 —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