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지체함과 하나님의 자비
소돔의 멸망이 임박한 새벽에 천사들은 롯을 재촉했다. 그런데 롯은 지체했다. 창세기 19장 16절은 그 사람들이 롯과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성 밖으로 이끌어 내었다고 적는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셨기 때문이다. 본문은 롯의 결단이 아니라 붙잡은 손을 구원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같은 장 29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고 덧붙인다. 지체함과 자비가 어떻게 한 절 안에 놓였는지 살펴본다. 베드로후서와 누가복음이 이 장면을 다시 언급한다.
창세기 19장에서 가장 짧게 지나가지만 무게가 실린 대목이 16절이다. 롯이 지체하는 장면과 천사들이 손을 잡아 끌어내는 장면이 한 문장 안에 붙어 있다. 구원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 새벽의 상황
창세기 19장 12절과 13절에서 천사들은 롯에게 이 성에 속한 사람을 모두 데리고 나가라고 말한다. 롯은 사위들에게 알렸으나 그들은 농담으로 여겼다.
동틀 무렵 천사들은 다시 재촉했다. 15절은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는 말을 전한다. 남은 시간이 없었다.
지체하다
16절의 첫 마디가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라는 말이다. 본문은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앞선 장면들이 짐작을 돕는다. 롯은 성문에 앉아 있었고 재산과 사위와 삶의 터전이 그 성 안에 있었다. 심판이 온다는 말을 들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돔을 고른 창세기 13장의 선택이 이 새벽까지 이어진 셈이다.
손을 잡아 이끌어 내다
천사들은 설득을 멈추고 행동했다. 16절은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었다고 적는다.
이어 붙은 설명이 핵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다는 말이다. 롯이 결심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끌려 나왔고 그 힘의 출처가 여호와의 자비였다.
소알을 청하다
성 밖으로 나온 뒤에도 롯의 망설임은 끝나지 않았다. 천사는 산으로 도망하라 했으나 롯은 그곳까지 이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창세기 19장 20절에서 그는 가까운 작은 성읍을 가리키며 도망하게 해 달라고 청했고 허락을 받았다. 그 성읍이 소알이라 불렸다. 22절은 네가 그리로 갈 때까지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는 천사의 말을 전한다. 심판이 한 사람의 걸음을 기다린 장면이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을 두고 하나님과 여러 차례 흥정하듯 간구했다. 오십 명에서 시작해 열 명까지 내려갔다. 성읍은 결국 무너졌다.
그러나 창세기 19장 29절은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고 적는다. 아브라함의 간구가 성읍을 살리지는 못했으나 조카 한 사람에게 닿았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베드로후서 2장 7절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고 말한다. 창세기가 그린 지체함과 이 평가가 어긋나 보인다.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면 롯이 의롭다 인정받은 근거가 그의 결단력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진다.
누가복음 17장 32절에서 예수께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같은 손에 이끌려 나왔으나 뒤를 돌아본 사람의 결말을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구원과 미련이 한 가족 안에서 갈렸다.
마무리
창세기 19장 16절은 롯의 신앙을 칭찬하지 않는다. 지체하는 사람과 붙잡는 손을 나란히 놓을 뿐이다. 이 절이 밝히는 원인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여호와의 자비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8:32 —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 창세기 19:15 —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 창세기 19:16 —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아 성 밖에 두니
- 창세기 19:22 —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 창세기 19:29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 누가복음 17:32 — 롯의 처를 기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