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맏아들이며 애굽 여종 하갈에게서 났다. 사래의 학대를 피해 광야로 달아난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다. 태중의 아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하시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말이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복을 받아 열두 두령의 아버지가 되리라 하신다. 이삭이 태어난 뒤 하갈과 이스마엘은 집을 떠나게 된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물이 떨어졌을 때 하나님이 다시 개입하신다. 창세기 25장은 그의 열두 아들 이름을 실제로 적어 둔다.
이스마엘은 언약의 줄기에서 벗어난 아들이지만 창세기는 그를 잊지 않는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약속이 세 번 기록되고 마지막에는 족보로 이행이 확인된다. 언약 밖에 있다는 말이 버려졌다는 뜻은 아니다.
태어나기 전에 주어진 이름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자 애굽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준다(창 16:1-3). 하갈이 잉태하자 두 여자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하갈은 광야로 달아난다.
술 길 곁 샘물 가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을 만난다.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 16:11).
들나귀 같은 사람
같은 대목은 그 아이의 성격을 미리 말한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창 16:12). 축복과 경고가 한 문장에 섞여 있다.
하갈은 자기에게 이르신 하나님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부른다(창 16:13). 성경에서 하나님께 이름을 붙인 첫 사람이 이 여종이다.
언약의 자리에서 갈라지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신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자 하나님은 아니라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신다(창 17:18-19).
그러면서도 이스마엘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창 17:20).
광야에서 다시 들으시다
이삭이 젖을 뗀 뒤 사라의 요구로 하갈과 아이는 집을 떠난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하갈은 아이를 떨기나무 아래 두고 물러앉는다. 아이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말이 붙는다(창 21:16).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21:17-18). 이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샘물이 보였다.
열두 두령의 아버지
창세기 25장 12절부터 18절은 이스마엘의 족보를 적는다. 느바욧과 게달을 비롯한 열두 아들의 이름이 차례로 나온다. 그들이 각기 촌과 부락을 이루고 열두 지도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붙는다.
약속의 문장과 족보의 이름이 정확히 맞물린다. 창세기는 이 대조를 설명 없이 놓아둔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스마엘의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이다. 하갈이 광야에서 두 번 들으신 하나님을 만난 사실과 이름이 겹친다. 창세기는 언약 밖에 있는 사람의 울음도 하나님께 상달된다고 적는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에서 하갈과 사라를 두 언약의 비유로 사용한다. 다만 그 비유는 이스마엘 개인의 운명을 다루지 않는다.
마무리
이스마엘은 언약의 상속자가 아니었으나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다. 창세기는 그의 후손을 실제 이름으로 기록해 그 약속의 이행을 남긴다. 선택의 이야기 옆에 보살핌의 이야기가 나란히 놓인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6:11 —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 창세기 16:13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
- 창세기 17:20 —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 창세기 21:17-18 —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 창세기 21:19 —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 창세기 25:16 — 그들의 촌과 부락대로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