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하고 공허한 땅
창세기 1장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기록한다. 혼돈과 공허는 히브리어 토후와 보후를 옮긴 말로, 모양도 채움도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어지는 엿새는 이 두 가지 결핍을 차례로 해결한다. 앞의 사흘은 빛과 하늘과 뭍으로 자리를 만들고 뒤의 사흘은 그 자리를 생물로 채운다. 수면 위에 계신 영은 새가 둥지를 품는 모습에 견주어 읽히며, 곧 시작될 창조를 예고한다. 창조 기사 전체가 이 두 결핍을 지워 가는 과정으로 읽힌다.
창세기는 첫 절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밝힌 뒤 곧바로 땅의 형편을 묘사한다. 혼돈하고 공허했다는 것이다. 창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장면이며, 뒤이은 엿새를 이해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토후와 보후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토후와 보후를 옮긴 표현이다. 두 낱말이 짝을 이루어 쓰였다.
토후는 꼴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보후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모양도 없고 채움도 없다는 뜻이다. 창세기 1장 2절은 여기에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는 말과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말을 덧붙인다.
만들고 채우는 엿새
이 두 가지 결핍이 이어지는 엿새의 뼈대를 정한다. 앞의 사흘은 꼴을 만들고 뒤의 사흘은 그 안을 채운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물과 물을 나누시며 뭍과 바다를 나누신다. 자리가 마련되자 그 자리에 사는 것들이 들어선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물에는 물고기가, 하늘에는 새가, 땅에는 짐승과 사람이 놓인다. 처음의 혼돈과 공허가 하나씩 지워지는 셈이다.
말씀이 하는 일
이 대목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이르시자 없던 것이 생기고 흩어져 있던 것이 자리를 잡는다.
땅이 스스로 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난다. 지어진 세계는 하나님이 손을 대실 때 비로소 뜻과 짜임을 얻었다. 지어진 것이 지으신 분께 기대어 있다는 이 생각은 성경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영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는 서술과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서술이 나란히 놓여 있다.
고대 근동의 글에서 깊음은 흔히 혼돈과 알 수 없는 것을 나타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계셨다는 말은 곧 손을 대실 참이라는 신호로 읽힌다. 운행하셨다는 낱말은 새가 둥지 위에서 알을 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키고 돌보며 생명을 기다리는 그림이다. 뒤이어 빛과 생명과 질서가 나오는 장면을 이 한 문장이 미리 비춘다.
여러 갈래의 읽기
이 상태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오래 논의돼 왔다. 땅이 처음에 실제로 그러했다고 읽는 견해가 있다.
영적이거나 도덕적인 어지러움을 나타내는 그림으로 읽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혼돈에서 질서로 옮겨 가는 흐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본을 보여준다는 데는 이견이 적다. 지어진 세계를 정돈하신 분이 사람의 삶도 구원과 성화로 정돈하신다는 이해다.
마무리
혼돈하고 공허했다는 한 구절은 창조 기사의 출발선이다. 아무 꼴도 없던 자리가 엿새 만에 살아 있는 세계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 문장이 있기에 또렷하게 읽을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1-2 — 태초의 창조와 혼돈하고 공허한 땅
- 창세기 1:3 — 빛이 있으라 하시니
- 창세기 1:9-10 — 뭍이 드러나고 땅과 바다가 갈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