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바다라 부르심
창세기 1장 9-10절은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셨다고 기록한다. 고대 근동에서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고 쓰임새를 정한다는 뜻이었다. 바다는 흔히 혼돈을 나타내는 자리였는데, 하나님이 그 물을 한곳에 모아 이름을 붙이심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가 마련됐다. 명령과 이룸과 판정이 되풀이되는 창세기 1장의 짜임 안에서 이 대목은 식물과 짐승과 사람이 놓일 자리를 준비한다. 사람이 땅을 맡아 돌보는 일도 이 자리에서 근거를 얻는다.
셋째 날 하나님은 물을 모으고 뭍을 드러내신 뒤 각각에 이름을 붙이셨다. 땅과 바다다. 짧게 지나가는 대목이지만 성경이 하나님과 지어진 세계의 관계를 말하는 방식이 여기에 담겨 있다.
셋째 날의 기록
창세기 1장 9-10절은 이렇게 전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름을 붙이는 일이 창조 행위의 한 부분으로 기록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으시고 나누시고 이름을 주시는 순서가 첫째 날부터 이어져 온 방식이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
성경이 놓인 자리에서 이름은 호칭에 그치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는 쪽이 그것을 다스리고 쓰임새를 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나님이 땅과 바다에 이름을 붙이셨다는 서술은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리는 셈이다. 각각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도 함께 정해졌다. 첫째 날 낮과 밤에 이름을 붙이신 일과 같은 결이며, 뒤에 아담이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장면도 이 흐름 위에 놓인다.
혼돈이 자리를 얻다
고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흔히 어지러움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곳이었다. 성경도 바다를 그런 자리로 그릴 때가 있다.
창세기 1장은 그 물을 한곳에 모으고 이름을 주신 일로 기록한다. 다스릴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두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는 이렇게 어지러움이 제자리를 얻은 뒤에 마련됐다.
되풀이되는 짜임
창세기 1장은 일정한 틀로 진행된다. 하나님이 이르시고 그대로 되고 보시기에 좋았다는 세 마디가 날마다 되풀이된다.
땅과 바다에 이름을 붙이신 대목도 그 틀 안에 있다. 좋았더라는 판정이 붙으면서 이 일이 뜻을 두고 이루어졌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곧이어 식물이 돋고 짐승이 살고 사람이 놓인다. 앞의 일이 뒤의 일을 준비하는 차례가 여기서도 이어진다.
사람에게 남는 몫
이 대목은 사람이 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도 닿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은 지어진 세계를 맡아 돌보도록 부름받았다.
돌본다는 일은 하나님이 정해 두신 자리와 쓰임새를 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땅과 바다가 누구의 것인지 알 때 그 위에서 사는 방식도 달라진다.
마무리
땅과 바다에 이름을 붙이신 일은 지어진 세계에 짜임과 쓰임이 정해진 순간이다. 어지럽던 물이 자리를 얻고 사람이 살 터전이 마련된 대목이 이 짧은 구절에 담겨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9-10 — 뭍을 땅이라,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심
- 창세기 1:5 —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심
- 창세기 1:28 — 땅을 다스리라 하신 명령
- 시편 95:5 —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