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상태
무죄의 상태는 타락 이전 아담과 하와가 놓여 있던 형편을 가리킨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져 땅을 맡았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막힘없이 지냈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마음껏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먹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졌고, 이 명령이 있었기에 순종과 불순종을 스스로 고를 수 있었다. 뱀의 부추김에 열매를 먹은 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 몸을 가렸다. 죄와 부끄러움과 끊어짐이 그때 들어왔고 로마서는 그 여파가 모든 사람에게 미쳤다고 말한다.
무죄의 상태는 창세기 앞부분이 그리는 타락 이전의 형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모르는 채로 하나님과 지어진 세계와 어긋남 없이 지내던 시기다. 성경이 이 시기를 길게 다루지는 않지만 이후 이야기의 기준선이 여기서 잡힌다.
형상대로 지어져 동산에 놓이다
창세기 1장 27-28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의 생물을 다스리라고 이르셨다고 전한다.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자리에 섰고 지어진 세계를 맡았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놓인 곳은 에덴동산이었다. 창세기 2장 8-9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심으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으며 보기에 좋고 먹기에 알맞은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고 기록한다.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서 있었다.
하나님과 막힘없이 지내던 시기
이 시기의 특징은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로막힌 것이 없었다는 데 있다. 창세기 3장 8절이 그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그 절은 두 사람이 날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전한다. 숨은 것은 이미 죄를 지은 뒤의 일이지만,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일 자체가 낯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문장에 남아 있다. 죄가 들어오기 전의 사귐이 어떠했는지를 뒤늦게 알려 주는 대목이다.
고를 수 있었던 자유
무죄의 상태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창세기 2장 16-17절의 명령이 그 점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마음껏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이르셨다. 지킬 수도 있고 어길 수도 있는 자리에 두셨다는 뜻이다. 도덕적으로 자라 갈 여지가 이 자유에 함께 담겨 있었다.
잃어버린 순전함
이 상태는 불순종으로 끝났다. 창세기 3장 6-7절은 그 장면을 전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 먹기에 좋고 눈에 즐거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열매를 따 먹었고 곁에 있던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렸다. 죄와 부끄러움과 하나님과의 끊어짐이 그때 들어왔다. 이어지는 3장 16-19절에서 하나님은 뱀과 여자와 남자에게 차례로 판결을 내리셨고 그 여파는 지어진 세계 전체에 미쳤다.
신학이 이 대목에서 얻은 것
무죄의 상태는 원죄 교리와 구원의 필요를 설명하는 바탕이 된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한다.
타락의 여파가 두 사람에게 그치지 않았다는 이해가 여기서 나오며,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한 이유도 같은 자리에서 설명된다. 동시에 이 상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본래 두신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려 준다. 거룩함과 사귐과 어긋나지 않는 관계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이 그리는 새 창조는 그 삶이 회복되는 자리로 읽힌다.
마무리
무죄의 상태는 성경에서 짧게 지나가지만 앞뒤를 재는 기준이 된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시작했는지 알아야 무엇을 잃었는지 보이고, 무엇을 잃었는지 알아야 회복이 무엇을 뜻하는지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