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기쁨과 웃음
사라는 두 번 웃었다. 처음은 장막 뒤에서 속으로 삼킨 웃음이었고 나중은 아들을 품에 안고 터뜨린 웃음이었다. 창세기 18장의 웃음은 나이 든 몸을 두고 나온 체념이었다. 창세기 21장의 웃음은 약속이 지켜진 뒤에 나온 감탄이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이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태어난 아들의 이름 이삭은 웃음을 뜻한다. 히브리서는 이 여인을 믿음의 목록에 올려 두었다. 사라는 아들을 안고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라고 말했다. 웃음의 뜻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사라의 웃음은 한 번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두고 두 번 웃었는데 그 뜻이 정반대였다. 아들의 이름이 그 두 웃음을 한 단어로 묶어 낸다.
자손을 두고 주어진 약속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고향에서 불러내시며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다(창 12:1-3). 그러나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창세기 15장에서 약속은 더 구체적으로 되풀이된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 하늘의 별을 세어 보게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창 15:4-5).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식은 없었다.
장막 뒤에서 삼킨 웃음
창세기 18장에서 여호와가 마므레 상수리나무 곁에 나타나신다. 내년 이맘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이 장막 안까지 들렸다.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였다(창 18:12). 이 웃음에는 기대가 없다. 오래 기다린 사람이 더 기다리지 않기로 한 자리에서 나온 반응이다.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여호와는 사라의 웃음을 짚으신 뒤 한 문장을 남기셨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14). 그리고 기한이 이르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다시 붙이셨다.
약속의 내용도 날짜도 바뀌지 않았다. 사라의 반응이 그것을 흔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이은 장에서 드러난다.
기한이 이르러 태어난 아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창 21:1-2). 아브라함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다.
이삭은 웃는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한때 의심의 표시였던 낱말이 아이의 이름표가 된 셈이다.
모두가 함께 웃는 웃음
사라는 아들을 낳은 뒤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 웃음의 주어가 바뀌었다.
처음 웃음은 사라 혼자 속으로 삼킨 것이었다. 나중 웃음은 소리 내어 나누는 것이다. 같은 동사가 체념에서 기쁨으로 옮겨 갔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삭의 출생은 아브라함 언약이 실제 후손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계보가 여기서 시작된다.
신약은 사라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한다. 히브리서 11장 11절은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으므로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적는다. 장막 뒤의 웃음보다 뒤에 온 신뢰가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마무리
사라의 이야기는 웃음이라는 한 낱말로 요약된다. 믿기 어려워 웃었고 이루어진 뒤에 다시 웃었다. 그 사이에 놓인 것은 사라의 결심이 아니라 기한을 지키신 하나님의 행동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5:5 —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창세기 18:12 —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 창세기 18:14 —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 창세기 21:2 —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
- 창세기 21:6 —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 히브리서 11:11 —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