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과 야벳의 복
홍수가 끝난 뒤 노아는 농사를 지으며 포도원을 가꾸었다.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벗은 채 누웠을 때 함은 그 모습을 보고 밖에 있는 두 형제에게 알린다.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를 덮었다. 잠에서 깬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리고 셈과 야벳에게는 복을 빈다. 셈의 복은 여호와를 셈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말로 시작한다. 야벳에게는 창대함과 셈의 장막에 거하는 복이 주어진다. 창세기 9장 26절과 27절에 담긴 이 말이 이후 민족들의 자리를 가른다.
셈과 야벳이 받은 복은 창세기 9장 26절과 27절에 나온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누웠던 사건 바로 뒤에 놓인 말이다. 세 아들의 서로 다른 반응이 그대로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홍수 뒤 포도원을 가꾼 노아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농사하는 사람이 되어 포도나무를 심었다. 창세기 9장 20절과 21절은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웠다고 적는다. 심판을 건넌 의인의 첫 기록이 실패의 장면이다. 성경은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함이 본 것과 두 형제가 한 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알렸다.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를 덮었다. 얼굴을 돌린 채였으므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창 9:22-23).
같은 상황에서 한쪽은 드러냈고 다른 쪽은 가렸다. 이어지는 노아의 말은 이 차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노아가 입을 열다
술에서 깬 노아는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세 갈래로 나뉜 말을 남긴다. 가나안에게는 저주가 내리고 셈과 야벳에게는 복이 선언된다. 창세기 9장 25절에서 27절이 그 말을 그대로 옮긴다.
셈에게 주어진 복
셈의 복은 특이한 형식으로 시작한다. 셈을 직접 축복하는 대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말한다. 복의 근원이 사람이 아니라 그와 관계 맺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이다. 셈의 후손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나오고 이스라엘이 세워진다.
야벳의 창대함과 셈의 장막
야벳에게는 하나님이 창대하게 하시기를 구하는 말이 주어진다. 이어 그가 셈의 장막에 거하리라는 구절이 붙는다. 영토의 확장과 함께 셈이 받은 몫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야벳의 자손은 널리 퍼져 나간 민족들과 연결된다.
가나안에게 내린 저주
저주는 함이 아니라 그 아들 가나안에게 향한다. 가나안은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말을 듣는다. 이 선언은 셈의 복과 야벳의 복에서 각각 한 번씩 되풀이된다. 뒷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주민을 정복한 일이 이 말과 이어져 읽힌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 대목은 민족들의 자리를 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낸다. 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방향이 여기서 처음 잡힌다.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구절은 이방인이 복음에 참여하는 그림으로 자주 읽힌다. 에베소서 2장 13절과 14절은 멀리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마무리
노아의 말은 세 아들의 성품을 평가한 판결문이 아니다. 후손들이 걸어갈 길을 미리 가리킨 선언에 가깝다.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세대를 넘어 영향을 남긴다는 사실이 이 장면에 담겨 있다. 성경은 그 여파를 이후의 역사에서 하나씩 확인해 준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9:20-21 — 노아가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 창세기 9:22-23 — 셈과 야벳이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를 덮다
- 창세기 9:25 —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 창세기 9:26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창세기 9:27 —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