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과 레위의 항변
세겜 사건 끝에 야곱과 두 아들이 정면으로 맞선다. 야곱은 집안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책망했다.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냐고 되받았다. 창세기 34장은 여기서 끝나고 누가 옳은지 밝히지 않는다. 두 사람의 분노에는 가족의 명예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할례를 미끼로 삼고 성읍 전체를 노략한 방법은 그 명분을 넘어섰다. 야곱은 이 일을 잊지 않고 창세기 49장에서 다시 꺼냈다. 정당한 분노와 정당한 행동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드러낸다. 성경은 두 사람의 반문에 답을 달지 않고 장을 끝낸다.
창세기 34장 마지막 절은 시므온과 레위의 반문으로 끝난다. 사건의 옳고 그름을 성경이 직접 판정하지 않는 대목이다. 두 사람이 든 명분과 그들이 쓴 방법을 나누어 보아야 그림이 잡힌다.
디나가 당한 일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 그 지방의 추장인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다가 욕보였다. 세겜은 그 뒤 디나에게 마음이 깊이 끌려 다정하게 말하며 아내로 삼고자 했다. 그는 아버지 하몰에게 혼인을 성사시켜 달라고 청했다.
야곱의 침묵과 하몰의 제안
야곱은 소식을 들었으나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올 때까지 잠잠했다. 하몰이 찾아와 두 집안이 서로 혼인하고 함께 살며 매매하자고 제안했다. 세겜 자신도 나서서 어떤 값이든 요구대로 내겠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관대한 조건이었다.
할례를 내건 대답
디나의 친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속임수로 답했다. 성읍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다면 혼인에 응하겠다는 조건이었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이었으니 명분상 반박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하몰과 세겜이 이를 성읍 사람들에게 설득해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다.
사흘째 되어 그들이 아파할 때 두 형제가 칼을 들고 성읍에 들어갔다. 남자를 모두 죽이고 하몰과 세겜도 죽인 뒤 세겜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왔다. 나머지 아들들은 성읍을 노략해 양과 소와 나귀와 여자와 아이들을 끌어갔다.
야곱의 책망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불러 꾸짖었다. 자기를 이 땅 주민에게 악취가 나게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자기 집안은 수가 적어 그들이 모여 치면 멸망하리라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담겼다. 야곱의 책망은 도덕이 아니라 안전을 먼저 짚었다.
형제의 항변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았다. 창세기 34장 31절에서 그들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라고 되물었다. 누이가 받은 모욕을 그대로 두는 편이 더 큰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가족의 명예가 걸린 문제에서 침묵은 동의와 같다고 본 셈이다.
명분과 방법의 거리
고대 근동에서 집안 여자의 명예는 가문 전체의 문제로 다루어졌다. 그런 배경에서 두 형제의 분노 자체를 무리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수단이었다.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함정으로 쓰고 사건과 무관한 성읍 사람 전부를 죽였다.
성경은 두 사람의 항변에 답을 달지 않은 채 장을 끝낸다. 대신 야곱의 유언에서 판단이 나온다. 창세기 49장 5절과 6절은 그들의 칼을 폭력의 도구라 부르고 그 분노를 저주한다.
마무리
시므온과 레위의 항변은 정당한 분노와 정당한 행동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누이를 지켰으나 집안을 위험에 몰아넣었다.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형벌의 한계를 스스로 정했다. 창세기 34장은 그 결과를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34:1-2 — 그 땅 추장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를 보고
- 창세기 34:13 — 야곱의 아들들이 속여 대답하였으니
- 창세기 34:25 — 제삼일에 그들이 아직 아파할 때에
- 창세기 34:30 — 나로 하여금 이 땅 주민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 창세기 34:31 —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 창세기 49:5-6 —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