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해명
아브라함은 두 차례 왕 앞에서 자기 행동을 해명해야 했다. 애굽에서는 바로가 어찌하여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랄에서는 아비멜렉이 무슨 뜻으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따졌다. 그의 대답은 두 번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이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다는 것이다. 사라가 이복 누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 반면 모리아 산에서는 아무 설명도 내놓지 않고 그저 순종했다. 그가 없다고 여긴 하나님 경외가 정작 이방 왕에게 있었다. 성경은 그의 판단 착오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자기 행동을 설명해야 했던 장면이 몇 번 나온다. 그 해명은 대개 변명에 가깝다. 그러나 말을 아낀 자리도 있다. 세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본다.
해명해야 했던 사람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받은 땅으로 옮긴 나그네였다. 성읍 국가들 사이를 오가며 살았고 군대도 성벽도 없었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 낯선 왕은 언제나 위협이었다.
그가 내놓은 해명은 대부분 이 처지에서 나온다. 성경은 그의 판단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다.
애굽의 바로 앞에서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아브람은 사래를 누이라고 말했다. 바로가 사래를 궁으로 데려갔고 하나님이 그 집에 재앙을 내리셨다. 사실을 알게 된 바로가 그를 불러 따졌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그가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창 12:18).
이 대목에서 아브람의 대답은 기록되지 않았다. 바로는 그를 그대로 내보냈다. 침묵 자체가 그가 할 말이 없었다는 표시로 읽힌다.
그랄의 아비멜렉 앞에서
같은 일이 그랄에서 되풀이된다.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직접 입을 열었다. 이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창 20:11). 첫 번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사실 관계였다. 그는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창 20:12). 세 번째는 오래된 약속이었다. 아버지 집을 떠날 때부터 이르는 곳마다 오라비라 하라고 사라와 맞춰 두었다는 것이다(창 20:13).
해명의 구조
두 사건의 해명은 같은 틀을 가진다. 상황 판단이 앞에 오고 사실의 절반이 뒤를 받친다.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근거를 미리 확보해 두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논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두 왕 모두 그의 판단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그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 있었다.
말이 없던 자리
모리아 산의 장면은 성격이 다르다.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웠다. 그의 행동을 설명한 것은 하나님 편이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아브라함의 해명은 사람의 두려움이 어떻게 판단을 접는지 보여 준다. 그가 없다고 여긴 하나님 경외가 정작 이방 왕에게 있었다. 반대로 그가 아무 말 없이 순종한 자리에서는 경외라는 말이 하나님 입에서 나왔다.
신약은 이 사람을 믿음의 본보기로 인용한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고 적었다(약 2:21-22). 그의 믿음은 흠 없는 이력이 아니라 오래 걸린 성장으로 그려진다.
마무리
아브라함이 내놓은 설명은 대체로 자기를 지키려는 말이었다. 성경은 그것을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설명 없이 순종한 하루를 나란히 놓았다. 두 기록이 같은 사람의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2:18-19 — 그가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 창세기 20:11 — 이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 창세기 20:12 — 그는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 창세기 20:13 — 우리가 이르는 곳마다 너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 창세기 22:12 —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이제야 아노라
- 야고보서 2:21-22 —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