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건져 주시기를 기도하다
이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던 야곱은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마주 온다는 전갈을 받았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은 일행을 두 떼로 나눈 뒤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부르는 말로 시작해 돌아가라 하신 명령을 되짚는다. 야곱은 자신이 받은 은혜에 합당하지 않다고 고백하며 지팡이 하나로 요단을 건넜던 처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형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구한 뒤 자손을 바다 모래같이 하시겠다는 약속을 근거로 내민다.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가장 긴 기도다.
창세기 32장 9절부터 12절까지는 야곱이 직접 올린 기도를 그대로 옮겨 놓는다. 창세기 전체에서 족장의 기도가 이만큼 길게 인용된 예는 드물다. 형을 만나기 하루 전의 말이다.
기도가 나온 자리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길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 그곳을 마하나임이라 불렀다(창 32:2). 그 직후 에서에게 보낸 사자들이 돌아와 형이 사백 명과 함께 오고 있다고 알렸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사람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누었다(창 32:7-8). 한 떼가 침을 당하면 다른 떼는 피하리라는 계산이었다.
부르는 이름
기도는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하는 부름으로 열린다. 야곱은 자기 공로가 아니라 조상과 맺으신 언약 위에 선다.
이어 고향과 족속에게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다. 지금의 위험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결과임을 짚은 셈이다.
지팡이 하나와 두 떼
야곱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 32:10).
스무 해 전 홀몸으로 도망치던 사람이 이제 큰 무리를 이끈다. 이 대비가 기도의 감사 부분을 이룬다.
건져 달라는 간구
본론은 짧고 분명하다.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하는 말이다. 야곱은 형이 와서 자기와 처자들을 칠까 두렵다고 솔직히 밝힌다(창 32:11).
에서가 분노한 이유는 야곱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장자권과 축복을 속여 얻은 뒤 도망친 사람이 이제 그 형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약속을 근거로 내밀다
마지막에 야곱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고 맺는다(창 32:12). 하나님을 설득하는 흥정이 아니다.
약속하신 분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전제 위에서 구하는 방식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기도 뒤에 한 일
야곱은 기도한 뒤 손을 놓지 않았다. 염소와 양과 낙타와 소와 나귀를 떼로 나누어 형에게 예물로 앞서 보냈다(창 32:13-21). 고대 근동에서 예물을 먼저 보내는 것은 상대의 호의를 구하는 관례였다.
같은 밤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홀로 남아 날이 새도록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다(창 32:24-28).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호세아 12장 4절은 야곱이 울며 간구하였다고 이 밤을 되짚는다. 속임수로 복을 챙기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께 구해서 받는 자리로 옮겨 간다. 야곱의 기도는 언약을 붙드는 기도의 본보기로 남았다.
다음 날 에서는 달려와 야곱을 안고 입을 맞춘다(창 33:4). 두려워하던 만남이 화해로 끝났다.
마무리
야곱의 기도는 감사와 고백과 간구와 약속 인용으로 짜여 있다. 자기 처지를 꾸미지 않고 두려움을 그대로 아뢴다. 창세기는 이 기도와 얍복의 씨름을 나란히 붙여 놓았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32:7 —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창세기 32:10 — 내가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 창세기 32:11 —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 창세기 32:12 —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게 하리라
- 창세기 33:4 —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입을 맞추니
- 호세아 12:4 — 그가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