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지명이야기

에덴

에덴은 창세기 2장에 처음 등장하는 지명으로, 하나님이 동방에 심은 동산이 그 안에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이곳에서 하나님과 막힘없이 지냈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서 있었다.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은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네 줄기로 갈라졌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명령을 어기고 열매를 먹은 뒤 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막혔고, 성경은 마지막 책에서 그 나무를 다시 등장시켜 회복의 약속으로 이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에덴은 성경에 나오는 첫 사람의 거처다. 하나님이 손수 심은 동산이 그 안에 있었고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땅과 다투지 않고 하나님과 막힘없이 지냈다. 창세기 2장에서 3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이 자리에서 벌어진다.

창세기가 말하는 에덴

에덴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2장이다.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들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었다고 본문은 기록한다(창 2:8-9). 땅에서는 보기에 좋고 먹기에 알맞은 나무가 자라났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서 있었다.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에덴과 동산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문은 동산이 에덴 안에, 그것도 동쪽에 자리했다고 말한다. 에덴은 더 넓은 지역의 이름이고 동산은 그 안에 따로 마련된 구역이었다. 사람이 살도록 준비된 자리가 우연히 생긴 곳이 아니라 심어진 곳이라는 사실도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네 갈래 강이 흐르던 자리

에덴이 어디였는지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남은 실마리는 창세기 2장 10-14절뿐이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신 뒤 네 줄기로 갈라졌는데 그 이름이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다.
뒤의 두 강은 오늘날까지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어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지목하는 근거가 된다. 반면 앞의 두 강은 어느 물줄기를 가리키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발굴로 뒷받침된 위치도 아직 없다. 지도 위에 점을 찍으려는 시도는 오래됐지만 결론은 여전히 추정에 머물러 있다.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다고 해서 본문이 전하려는 바가 흐려지지는 않는다. 강줄기 묘사는 동산이 메마른 곳이 아니라 물이 넉넉한 땅이었음을 보여준다.

죄를 모르던 시절

에덴은 창조가 어긋나기 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거리낄 것이 없었고 사람과 자연도 서로 등지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아직 이야기에 들어오지 않은 시기다.
동산 한가운데 선 두 그루 나무가 이 자리의 성격을 드러낸다. 생명나무는 끝나지 않는 생명을 가리키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에게 맡겨진 선택을 가리킨다. 순종할 수도 있고 어길 수도 있는 자리에 사람을 세워 두었다는 뜻이다. 무결한 상태였다는 말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동산 밖으로

뱀의 말을 들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서 이야기는 방향을 바꾼다(창 3장). 하나님은 사람을 동산에서 내보내 그가 나온 땅을 갈게 하셨고,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 3:23-24).
사람이 스스로 걸어 나간 것이 아니라 쫓겨났다는 점, 그리고 돌아가는 길이 막혔다는 점이 이후 성경 전체가 안고 가는 문제로 남는다. 낙원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그 문을 사람 힘으로는 다시 열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더 무겁다.

다시 열리는 동산

성경은 에덴을 잃어버린 과거로만 두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는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한다. 새 예루살렘 한복판을 흐르는 강 곁에 서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잎은 만국을 고치는 데 쓰인다.
창세기에서 막힌 길이 마지막 책에서 열리는 셈이다. 교회가 오래전부터 에덴을 앞으로 주어질 낙원의 그림자로 읽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잃은 자리를 되찾는 이야기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 가운데 하나이며, 그 회복의 근거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둔다.

예술과 신학에 남긴 자취

에덴 이야기는 성경 밖에서도 오래 회자됐다. 화가들은 동산과 두 나무와 뱀을 수없이 그렸고 문학은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주제를 되풀이했다.
신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원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인간의 본성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 하는 논의는 대개 이 본문에서 출발한다. 서구 사상사에서 에덴만큼 자주 불려 나온 장면도 드물다.

마무리

에덴은 하나님이 처음 만들어 둔 세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주는 자리이자 그 세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자리다. 성경은 이곳을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겨 두지 않고 회복의 약속과 이어 붙였다. 창세기 2장을 읽는 동안 동산의 지리보다 오래 남는 것은 그 약속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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