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의 할례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넌 직후 여리고로 진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부싯돌 칼을 만들어 백성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명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었고 그 뒤에 태어난 세대는 언약의 표를 받지 못한 채 자랐기 때문이다. 할례를 마친 뒤 하나님은 애굽의 수치를 굴려 보냈다고 선언하셨고 그 자리는 길갈로 불렸다. 이어 유월절을 지켰고 만나가 그쳤다. 가나안 정복의 첫 순서는 무기가 아니라 언약이었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일은 그 뒤에 이어진다. 할례는 본래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표징이었다.
여호수아 5장에서 이스라엘이 갑자기 할례를 받는 장면은 전쟁 준비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목은 가나안 정복의 첫 순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 준다. 여리고를 치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백성의 몸에 언약의 표를 새기게 하셨다.
요단을 건넌 직후의 상황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 길갈에 진을 쳤다. 요단 서편의 아모리 왕들과 가나안 왕들은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아 정신을 잃었다 (수 5:1).
군사적으로는 곧장 진격할 수 있는 때였다. 하나님은 바로 그 시점에 다른 명령을 주셨다. 부싯돌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이었다 (수 5:2).
부싯돌 칼과 기브앗 하아랄롯
여호수아는 명령대로 부싯돌 칼을 만들어 백성에게 할례를 행했다 (수 5:3). 금속 연장이 이미 널리 쓰이던 시대에 돌칼을 쓴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어진 오래된 방식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할례가 행해진 곳에는 기브앗 하아랄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피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지명 자체가 그날의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광야 세대가 받지 못한 표
애굽에서 나온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에 나갈 만한 자들은 광야 사십 년 동안 다 죽었다.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는 할례를 받지 못한 채 자랐다 (수 5:4-5).
사십 년의 유랑은 언약의 표가 한 세대 동안 끊겼던 기간이기도 하다. 여호수아가 행한 할례는 그 끊어진 자리를 다시 잇는 일이었다.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다
백성이 낫기까지 진중에 머무른 뒤 하나님은 오늘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수 5:9). 그 자리의 이름은 길갈이 되었다. 굴린다는 뜻의 히브리어 낱말이 그 선언과 소리로 이어진다. 종살이하던 백성이라는 신분이 여기서 정리되었다. 이제 그들은 땅을 받는 백성으로 섰다.
유월절로 이어지는 순서
할례 다음에 온 것은 유월절이다. 이스라엘은 그달 십사일 저녁 길갈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수 5:10). 순서에는 이유가 있다. 할례받지 않은 자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규정이 이미 있었다 (출 12:48). 유월절 이튿날부터 만나가 그쳤고 백성은 그 땅의 소산을 먹었다 (수 5:12).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표징이었다 (창 17:10-14). 길갈에서 행한 할례는 그 옛 언약이 새 세대에게도 그대로 유효함을 확인한 절차다.
신약은 이 표를 마음의 문제로 다시 읽는다. 바울은 겉모양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된 것이라 했다 (롬 2:28-29).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골 2:11).
마무리
길갈의 할례는 정복 전쟁의 첫머리에 놓인 비군사적 사건이다. 이스라엘은 칼을 들기 전에 몸에 언약을 새겼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일은 그 뒤에 온다. 순서가 이 사건의 성격을 드러낸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여호수아 5:2-3 — 부싯돌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 여호수아 5:9 — 오늘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 창세기 17:10-14 —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나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 출애굽기 12:48 — 할례받지 못한 자는 유월절을 먹지 못하리라
- 로마서 2:28-29 —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가 참 유대인이라
- 골로새서 2:11 —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그 안에서 받았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