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앗수르는 창세기 10장에서 셈의 아들로 처음 나온다. 같은 장은 그 이름이 니느웨와 갈라를 세운 세력과 이어진다고 적는다. 후대에 이 이름은 근동을 뒤흔든 제국의 이름이 되었다. 이사야는 앗수르를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라 부르며 북이스라엘을 치는 도구로 그린다. 그러나 교만과 잔혹함 때문에 앗수르 자신도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나훔은 니느웨를 피의 성이라 부르며 그 끝을 예고한다. 이사야 19장은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예배하는 날을 내다본다.
앗수르는 사람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나라와 지역의 이름이다. 창세기 족보에서는 셈의 아들로 나오고 예언서에서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제국으로 나온다. 성경은 이 이름을 심판의 도구와 심판의 대상 양쪽에 놓는다.
셈의 계보에 오른 이름
창세기 10장 22절은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라고 적는다. 앗수르는 셈 계열에 속한다. 아브라함이 나온 아르박삿 계열과 형제 뻘인 셈이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두 갈래가 훗날 서로 맞서게 된다는 점이 이 족보를 읽는 한 가지 열쇠다.
니느웨를 세운 손
창세기 10장 11절은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를 건설하였다고 기록한다. 이 구절은 앗수르라는 이름이 사람에서 지역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보여 준다. 니느웨는 훗날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요나가 보냄을 받은 도시이기도 하다. 갈라 역시 앗수르 왕들이 오래 머문 중심지였다.
진노의 막대기로 쓰이다
열왕기와 예언서는 앗수르를 이스라엘 역사의 큰 위협으로 그린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손에 무너졌고 유다도 오랜 압박을 받았다. 이사야는 이 사태를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이사야 10장 5절은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고 말한다. 이어 하나님이 그를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라고 보냈다고 밝힌다(사 10:6). 제국의 군대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로 그려진다.
도구에게 돌아간 심판
막대기로 쓰였다고 해서 앗수르가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이사야는 같은 장에서 앗수르의 교만을 지적한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훔 3장 1절은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다고 외친다. 니느웨의 잔혹함이 곧 그 도시의 죄목이었다. 결국 앗수르는 무너졌다.
이사야가 본 마지막 그림
심판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 이사야 19장 23절 이하는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생기는 날을 그린다. 두 나라 사람이 오가며 함께 여호와를 예배한다.
같은 대목은 애굽은 나의 백성이요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자요 이스라엘은 나의 기업이라는 선언으로 끝난다(사 19:25). 이스라엘을 친 제국이 결국 하나님의 백성 곁에 놓인다.
성경 전체에서의 자리
앗수르는 성경이 열국을 다루는 방식을 압축해 보여 준다. 이방 제국도 역사의 주인이 아니다. 심판의 도구로 쓰이되 그 도구도 자기 행위를 책임진다. 그리고 심판 너머에 회복의 자리가 열려 있다.
마무리
셈의 아들 이름 하나가 제국의 이름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경은 그 제국의 흥망을 이스라엘의 역사와 나란히 적는다. 진노의 막대기와 피의 성과 손으로 지은 자라는 세 표현을 이으면 앗수르의 궤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0:22 —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
- 창세기 10:11 —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갈라를 건설하고
- 이사야 10:5-6 — 앗수르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 나훔 3:1 —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 이사야 19:23-25 —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복을 받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