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근심과 거절
야곱의 생애에는 유난히 근심이 잦다. 형을 피해 달아나던 밤에도 형을 만나러 가던 밤에도 그는 두려워했다. 요셉의 채색옷에 묻은 피를 본 뒤에는 아예 위로받기를 거절한다.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 가겠다는 말이 그의 답이었다. 흉년이 들었을 때도 그는 막내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려 하지 않았다. 유다가 몸으로 담보하겠다고 나선 뒤에야 마음을 돌린다. 겁 많고 정 많던 이 사람의 마지막 장면은 지팡이에 의지해 드린 경배였다. 성경은 그의 두려움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
야곱의 생애에는 유난히 근심이 잦다. 도망칠 때도 형을 만나러 갈 때도 그는 두려워했다. 아들을 잃은 뒤에는 위로받기조차 거절한다.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 아이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의 둘째 아들이다. 태에서 나올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있어 그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 (창 25:26).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이자 속이는 자다. 그는 장자권을 팥죽으로 사들였고 아버지의 축복은 형의 옷을 입고 받아냈다 (창 25:29-34). 근심의 뿌리가 여기서 시작된다.
형을 피해 달아나던 밤
에서가 죽이려 하자 야곱은 하란으로 도망친다. 해가 진 벧엘에서 돌을 베고 누웠을 때 사닥다리 꿈을 꾼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그에게 다시 하신다. 땅과 자손을 주고 어디로 가든지 지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말씀이었다 (창 28:10-15). 약속을 받았어도 그 뒤 스무 해는 라반과의 다툼으로 채워진다.
얍복 나루의 두려움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는다.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사람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눈다. 그러고는 기도한다. 자신은 베푸신 은총을 받기에 부족하며 지팡이 하나로 요단을 건넜을 뿐이라는 고백이었다 (창 32:9-12).
그날 밤 그는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했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창 32:24-30). 두려움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로 바뀌었다.
위로받기를 거절하다
요셉의 형들이 채색옷에 염소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가져왔다. 야곱은 아들의 옷인 줄 알아보고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었다. 여러 날 아들을 위해 애통하니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는 위로받기를 거절했다 (창 37:31-35).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 가겠다는 말이 그의 답이었다.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려 하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아들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갔다. 애굽 총리는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막내를 데려오라 했다. 야곱은 요셉도 없고 시므온도 없는데 베냐민마저 빼앗으려 하니 모든 일이 자기를 해롭게 한다고 말한다 (창 42:36-38).
르우벤의 제안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유다가 자기 몸으로 담보하겠다고 나서고 양식이 다 떨어진 뒤에야 야곱은 아들을 내보낸다 (창 43:8-14).
바로 앞에서의 고백
애굽에 내려간 야곱은 바로 앞에 선다.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고 조상의 나그네 길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한다 (창 47:9). 자기 생애를 스스로 요약한 말이다. 그는 바로를 축복하고 물러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야곱의 근심과 거절은 약점 그대로 기록되었다. 성경은 그를 다듬어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아버지로 세우셨다. 히브리서는 야곱이 죽을 때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적는다 (히 11:21). 두려워하던 사람의 마지막 장면이 예배다.
마무리
야곱은 끝까지 겁 많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위로를 거절하고 막내를 붙들던 아버지는 애굽에서 요셉을 다시 만난다. 근심이 걷힌 자리에서 그는 축복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25:26 —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야곱이라 하였더라
- 창세기 28:10-15 — 벧엘의 꿈에서 받은 땅과 자손의 약속
- 창세기 32:9-12 — 지팡이 하나로 요단을 건넜나이다
- 창세기 37:35 —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리라
- 창세기 42:38 —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라
- 창세기 47:9 —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