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짐승의 창조
창세기 1장 24-25절은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내라 하셨고 그대로 되었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땅의 짐승과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각기 그 종류대로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세 갈래로 나뉜 이 서술은 지어진 세계에 갈래와 차례가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날에 사람이 지어지므로 짐승과 사람은 하루를 나누어 쓴 셈이며, 사람이 이들을 맡아 돌보는 관계도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이 놓이기 전에 이 세계는 이미 좋은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여섯째 날은 두 가지 일로 채워진다. 먼저 육지의 짐승이 지어지고 그다음에 사람이 지어진다. 같은 날에 놓였다는 사실이 짐승과 사람의 관계를 읽는 실마리가 된다.
여섯째 날의 기록
창세기 1장 24-25절은 이렇게 전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명령과 이룸과 판정이라는 틀이 여기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땅은 내라 하심
셋째 날의 식물 창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땅에게 내라고 이르신다. 지으신 것이 그 안에서 생명을 내도록 하신 방식이다.
말씀이 먼저 있고 땅이 응답한다. 지어진 세계가 스스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몫을 한다는 이해가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세 갈래로 나눈 서술
본문은 육지의 짐승을 세 갈래로 적는다. 가축과 기는 것과 들짐승이다.
사람 가까이에서 사는 것들, 땅에 붙어 기어 다니는 것들, 들에서 사는 것들로 나눈 셈이다.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말이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갈래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이어진다는 뜻이며, 뒤섞인 무더기가 아니라 짜임이 있는 세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좋았더라
짐승을 지으신 뒤에도 좋다는 판정이 붙는다. 사람이 지어지기 전에 이미 이 생물들이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인정받았다.
쓸모에 따라 값이 매겨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지으신 뜻에 맞았다.
사람과 같은 날에
짐승과 사람이 같은 날에 지어졌다는 점은 오래 눈여겨봐 온 대목이다. 둘 다 땅에서 났고 같은 하루를 나누어 쓴다.
그러면서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다른 자리가 주어진다. 가깝고도 구별되는 관계다. 사람이 짐승을 맡아 돌보는 몫도 이 하루 안에서 함께 정해진다.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세계가 여섯째 날에 완성되는 셈이다.
읽어 온 방식
이 기록을 실제로 있었던 일로 읽어 온 전통이 오래됐다.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표현을 두고 갈래마다 그 안에서 이어지도록 지어졌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여기에 이어진다.
어느 쪽으로 읽든 본문이 말하려는 바는 같은 자리에 있다. 지어진 세계에 뜻과 짜임이 있으며 그 뒤에 지으신 분이 계신다는 것, 그리고 사람에게 이 생명들을 맡아 돌볼 몫이 있다는 것이다.
마무리
육지 짐승의 창조는 땅이 살아 있는 것들로 가득 차는 대목이다. 사람이 놓이기 직전에 이 세계가 이미 좋은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이 짧은 기록에 담겨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1:24-25 —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
- 창세기 1:28 —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창세기 2:19-20 — 아담이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다
- 시편 50:10-11 — 숲의 짐승들과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 잠언 12:10 — 의인은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