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다
이삭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사라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을 비웃는 모습을 보았다. 사라는 여종과 그 아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며 여종의 아들이 이삭과 유업을 함께 잇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언약이 이삭에게 이어진다는 말씀은 이미 주어져 있었다. 하나님은 쫓겨난 이스마엘에게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장면을 끌어와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으로 난 자를 갈라 설명한다.
이삭이 젖을 떼던 날의 잔치는 웃음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사라는 하갈의 아들이 자기 아들을 비웃는 모습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창세기 21장 8절부터 10절까지가 그 짧은 장면을 전한다.
두 아들이 한 집에 있던 시절
아브라함에게는 먼저 얻은 아들이 있었다. 애굽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다. 사라가 오래 기다린 끝에 이삭을 낳으면서 한 지붕 아래 상속을 다툴 두 아들이 함께 있게 되었다.
고대 근동에서 여종에게서 아들을 얻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만큼 상속 다툼도 흔했다. 아브라함의 집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젖 떼는 날의 잔치
아이가 젖을 떼는 날은 큰 잔치를 여는 날이었다. 영아 사망이 잦던 시대에 젖을 뗐다는 말은 아이가 살아남았다는 표시였다. 사라가 늦은 나이에 낳은 아들이었으니 그날의 무게는 더 컸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는 날 큰 잔치를 베풀었다.
사라가 본 조롱
잔치 자리에서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비웃는 모습을 보았다. 히브리어 본문이 쓴 낱말은 웃는다는 뜻과 놀린다는 뜻을 함께 담는다. 아이들의 장난으로 읽는 해석이 있고 상속을 노린 적의로 읽는 해석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라의 눈에는 이삭의 자리를 흔드는 행동으로 보였다. 사라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유업을 지키려는 요구
사라의 말은 분명했다. 여종의 아들이 이삭과 함께 유업을 잇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이삭에게 이어진다고 이미 밝혀져 있었다. 창세기 17장 19절에서 하나님은 사라가 낳을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시고 그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다. 사라의 요구는 거칠었으나 언약의 줄기가 갈라지는 자리에 놓였다.
쫓겨난 아들에게 남은 약속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창세기 21장 13절에서 여종의 아들도 아브라함의 씨이니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자라 열두 족장의 조상이 되었다. 언약의 줄기에서 갈라졌다는 말이 돌봄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바울이 다시 읽은 장면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9절과 30절에서 이 사건을 끌어온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던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는 창세기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율법에 매인 자리와 약속으로 얻은 자리를 갈라 보이려는 인용이다.
마무리
창세기 21장의 이 장면은 한 집안의 다툼처럼 읽히지만 언약이 누구에게 이어지는지를 가른다. 이삭은 약속으로 얻은 아들이었고 이스마엘은 사람의 계획으로 얻은 아들이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으나 언약의 길은 하나였다. 성경은 갈라선 쪽에도 하나님의 돌봄이 따랐다고 함께 적는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21:8-10 — 이삭이 젖을 떼던 날 사라가 본 것과 그의 요구
- 창세기 17:19 — 이삭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 창세기 21:13 — 여종의 아들도 아브라함의 씨이니 한 민족을 이루리라
- 갈라디아서 4:29-30 —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던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