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보고와 청혼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집에 들어가서도 먼저 밥을 먹지 않았다. 할 말을 마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꺼낸 이야기는 주인의 형편과 맹세와 우물가에서 받은 응답이었다. 자기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옮겼을 뿐이다. 브두엘과 라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가부를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리브가도 가겠다고 스스로 말했다. 창세기 24장에서 가장 긴 분량이 이 보고와 청혼 장면에 놓여 있다. 성경은 그 긴 말을 한 마디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
창세기 24장을 읽다 보면 같은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물가에서 벌어진 일이 34절부터 다시 한 번 종의 입으로 되풀이된다. 성경이 굳이 반복한 이유는 그 말이 곧 청혼이었기 때문이다.
자리의 배경
아브라함은 늙었고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다. 그는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사람의 딸에서 구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고향과 족속에게로 가라고 맡겼다 (창 24:2-4). 종은 낙타 열 필과 예물을 챙겨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으로 갔다.
밥보다 먼저 꺼낸 말
종은 리브가의 집에 들어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음식이 차려졌으나 그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24:33). 사절의 임무가 개인의 편의보다 앞선다는 태도다. 그는 곧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창 24:34).
주인의 형편부터
종은 먼저 아브라함의 상황을 알렸다. 여호와께서 주인에게 큰 복을 주셔서 양과 소와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얻게 하셨다는 말이었다 (창 24:35). 이어 사라가 노년에 아들을 낳았고 주인이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다고 덧붙였다 (창 24:36). 혼인 상대의 집안을 알리는 실무적인 설명이다.
맹세의 내용
다음은 자신이 왜 왔는지였다. 주인이 맹세하게 하여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며느리를 택하지 말고 아버지의 집 곧 족속에게로 가서 구하라 했다는 것이다 (창 24:37-38). 종은 여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어찌하느냐고 물었던 자기 염려도 감추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길을 형통하게 하시리라 답했다 (창 24:40).
우물가에서 받은 응답
종은 자신이 드린 기도를 그대로 옮겼다. 물을 청할 때 마시라 하고 낙타에게도 먹이겠다 하는 여자를 정하신 자로 알겠다는 기도였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메고 나왔고 청한 대로 행했다 (창 24:45-46). 이름을 물으니 나홀의 손녀요 브두엘의 딸이었다. 종은 몸을 굽혀 여호와께 경배했다 (창 24:48).
가부를 묻다
마지막 말은 짧고 분명했다. 이제 주인에게 인자와 진실을 베풀려거든 내게 말하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말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라 (창 24:49). 답은 라반과 브두엘에게서 나왔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창 24:50). 리브가를 데리고 가서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는 승낙이었다 (창 24:51).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 장면은 이삭과 리브가의 혼인으로 이어져 언약의 계보를 다음 세대로 잇는다. 리브가에게서 야곱이 나고 야곱에게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나온다. 신약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부르며 이 계보를 다시 짚는다 (갈 4:28). 종의 보고는 신학 강론이 아니라 사실의 나열이다. 성경은 그 담백한 진술 자체를 신실함의 모습으로 남겨 두었다.
마무리
종은 자기 공을 말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길을 인도하셨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름조차 본문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 창세기 24장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한다. 성경은 그를 아브라함의 종이라고만 부른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24:33 —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 창세기 24:37-38 — 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창세기 24:40 —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 길에 형통함을 주시리니
- 창세기 24:48 —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 창세기 24:50 —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 갈라디아서 4:28 —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