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애통
야곱은 아들 요셉을 잃었다고 믿고 옷을 찢은 뒤 여러 날 애통했다. 자녀들이 위로했으나 그는 위로받기를 거절했다. 사랑하던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고 야곱은 그 무덤 위에 기둥을 세웠다. 아버지 이삭의 장례는 형 에서와 함께 치렀다. 오랜 슬픔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으로 끝난다. 고센에서 부자가 다시 만났을 때 야곱은 이제 죽어도 족하다고 말했다. 창세기는 족장의 애통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다. 슬픔의 자리마다 언약의 약속이 함께 놓여 있었다.
야곱의 생애를 길게 덮은 정서는 애통이다. 그는 아들을 잃었다고 믿었고 사랑하던 아내를 묻었으며 아버지의 주검 앞에 섰다. 창세기는 그 슬픔을 감추지 않고 기록한다.
애통이 시작된 자리
야곱은 라헬에게서 얻은 요셉을 다른 아들보다 아꼈다. 형들은 그 편애를 견디지 못했고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넘겼다. 그러고는 염소 피를 묻힌 채색옷을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야곱은 짐승이 아들을 찢었다고 단정했다.
요셉을 잃고 옷을 찢다
창세기 37장 34절은 야곱이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었다고 전한다. 애통은 며칠로 그치지 않았다. 자녀들이 모두 나서서 위로했으나 그는 위로를 거절했다.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 가겠다는 말이 그 거절의 이유였다. 죽어야 끝나는 슬픔이라는 뜻이다.
라헬의 무덤 앞에서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숨을 거두었다. 야곱은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그를 묻었다 (창 35:19). 그리고 무덤 위에 기둥을 세웠다. 창세기 기자는 그 비석이 기록 당시까지 남아 있었다고 덧붙인다. 야곱이 라헬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그 돌 하나가 말해 준다.
아버지 이삭의 장례
이삭은 나이가 차고 기운이 다하여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장례를 치른 사람은 에서와 야곱 두 형제였다 (창 35:29). 장자권과 축복을 놓고 갈라섰던 두 사람이 아버지의 주검 앞에 나란히 섰다. 슬픔이 형제를 다시 한자리에 세운 셈이다.
애통이 그친 날
요셉이 살아 애굽을 다스린다는 소식에 야곱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아들이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돌아왔다. 고센에서 요셉이 아버지의 목을 안고 오래 울었다. 그때 야곱은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이제 죽어도 족하다고 말했다 (창 46:30). 수십 년 이어진 애통이 그 자리에서 그쳤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야곱의 애통은 한 집안의 감정으로만 남지 않는다. 형들이 저지른 악을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어 온 가족을 살리셨다는 요셉의 고백과 맞물린다 (창 50:20). 히브리서는 야곱을 죽을 때에 믿음으로 아들들을 축복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히 11:21). 슬픔의 한복판을 지나온 사람이 언약의 후손을 축복하는 자리에 섰다.
마무리
창세기는 족장의 슬픔을 다듬지 않는다. 위로를 거절한 아버지와 길가에 아내를 묻은 남편과 형제와 함께 아버지를 장사한 아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슬픔의 끝에 재회가 놓였다.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 창세기 37:34-35 — 야곱이 옷을 찢고 위로받기를 거절하다
- 창세기 35:19-20 — 라헬의 무덤 위에 기둥을 세우다
- 창세기 35:29 — 에서와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장사하다
- 창세기 46:30 — 요셉을 보고 이제 죽어도 족하다고 말하다
- 창세기 50:20 —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어 생명을 구원하시다
- 히브리서 11:21 — 야곱이 죽을 때에 믿음으로 축복하다
